우리 집엔 고양이 마리가 있다. 째는 쉘터에서 입양을 했고 째는 앞에 와서 밥달라고 애원하는 통에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째는 태어나자 마자 고양이가 되어 바로 쉘터로 가서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지내다가 우리 집에 왔지만 둘째는 태어나서 엄마를 잃고 근처를 방황하고 다녀서 집에 들어 와서는 온갖 병치레를 치렀다. 이미 각종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였고 피부병에다가 벼룩까지 있었으니 밖에 그냥 두었다면 얼마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발생하는 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간 돈도 된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고양이를 살리는데 돈이 아깝지 않았다. 왜냐면 일단 우리가 고양이를 집으로 들어오게 했고 식구처럼 맞아 들인 이상 돈이 든다고 버릴 없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고양이 마리를 살리는데 그런 돈을 써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구처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상 병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을 지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모든 병이 깨끗이 나은 째는 지금은 하루에도 없는 웃음을 선사하는 재롱덩이가 되어있다. 들어간 돈이 아깝지 않게 우리에게 하루에도 엄청난 엔돌핀을 선사하는 그런 귀한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도 고양이처럼 온갖 병에 걸려 죽을 밖에 없는 우리들을 그냥 불러 주셨다. 고린도 전서 성경공부를 준비하면서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을 소개 자신을 부르심을 받은 (고전 1:1)라고 소개했을까를 묵상하다가 문득 부르심에는 초청도 있지만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하나님의 굳은 약속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가족이 둘째 고양이를 우리 집으로 초청한 후에 돈이 들어가도 병을 고치는 수고를 하는 책임감을 보여 것처럼 말이다.

나는 둘째 고양이의 치료를 위해서 수입에 비하면 버거울 정도의 돈을 쓰긴 했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가 상상 없을 정도의 비용을 치루셨다. 바로 하나 밖에 없는 그의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일단 우리들을 그의 자녀로 초청하신 것이다. 이런 부르심과 초청을 생각만해도 감사한데 우리를 부르셨으니 이젠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확신에 또한 감사가 넘친다.


초청 받은 우리는 땅에 살면서 여전히 병든 모습으로 하나님을 걱정케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의 모습에 실망하시지 않으시고 여전히 병든 우리를 책임지시고 끝까지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만들기 위해 성령을 보내셔서 예수를 닮아 가도록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이런 특권이 있을까? 이번 감사절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다시 묵상해 보면 좋겠다. 끝까지 책임 지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감사가 넘치는 감사절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