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고양이가 마리가 있다. 하나는 다섯살 다른 하나는 살이다. 그런데 둘다 식이요법이 필요한 상태다. 왜냐면 다섯살 것은 과체중으로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어린 것은 몸에 크리스탈(결석) 있어 역시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라서 얼마전 부터 사서 먹이는 것을 줄이고 직접 만드는 것으로 대체 중이다. 그러면서 예전 보다 조금 적게 먹이는 관계로 대체로 양이 차지 않아선지 부엌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항상 귀를 쫑긋하고 먹으려나 하고 부엌으로 달려온다. 식탁에서 가족끼리 식사 때도 종종 음식 때문에 신경쓰일 때가 있다. 음식의 양을 줄이고 집밥으로 대체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인데 고양이의 입장에서 보면 음식이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이 있을 것이다. 그런대 만일 고양이들이 주인인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부족함에 대해서 뭐라 생각할까?

사도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너희 모든 것을 채우시리라’ ( 4:19) 말한다. 우리는 말씀에 대체로 힘을 얻는다. 그런데 이해해야 한다.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결정하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결정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린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만 느낀다. 하지만 결정권이 전능하시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에게 있다면 사정은 달라져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아시기 때문이다.

우리 고양이가 채워지지 않는 배에 불만족하는 것은 결정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건강을 위해서 음식의 양이 조절된 것을 있다면 배고픔에 대한 불만족은 어느정도 가시게 것이다. 우리의 불만족함에 대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요한 것을 우리가 결정하고 하나님께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집 고양이들처럼..

우리가 결정해서 부족함을 느끼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필요에 맞게 하나님이 결정하셔서 채워 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우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바울은 채워 주신다는 앞에 아주 중요한 전제 조건을 이야기 한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라고 말이다. 우리의 것을 채우시는데 제한 요소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이다. 우리 생활의 풍성함을 위해서 채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풍성대로 것을 채워주신 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필요한 것이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풍성함을 위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